캐릭터 스토리
란도의 이야기
깨죽
2025. 4. 18. 13:24
세상이 원래 그래,
누군가의 불행이나 행복은 아무런 영향도 없지.
오롯이 나 하나만 지옥에 처박혀 살아가는거야.
히어로가 되고 싶은 마음 따윈 없었다.아니,애초에 이런 귀찮은 일 따위를 할 마음은...
란도는 잠시 헛웃음 지었다.사실 거짓말이었다.
정의를 좇지 않으려 애를 써봐도,결국 자신은 히어로였다.
누군가가 시켜서가 아니라—빌어먹게도 자신의 의지였다.
자신의 생일날,국화꽃을 사는게 익숙해 지는것이 싫었다.
현관문을 열면 마주하는 냉기와 이 무거운 침묵이 소름끼치게 싫었다.
나는 아직도 이 현관문을 잡고 들어갈때면,
아무도 없을 걸 알면서도 혼자 인사를 건네곤 해.
'다녀왔습니다.'
내 목소리가 공허하게 현관을 울리고,불꺼진 집안이 한눈에 들어올 때면,
문득 그날이 떠오른다.
생일날이었지,아마 가족들은 나를 축하해주고 싶었던 것 같다.
별 다를것 없는 날이었지,그저 그런 하루였어.
동료들이 '오늘만큼은 일찍 퇴근하는게 어떻겠냐'며 내 등을 떠밀었고,
나는 못이기는 척 인사하고 나의 집으로 향했었다.
기묘하게도 고요한 현관 문 너머가 의아했지만,그리 대수롭지 않게 여겼어.
'다녀왔습니다.'
매일 똑같이 건네던 그 인사를 하고,신발장의 조명이 머리위로 탁—하는 소리와 점등하고,
나의 두 눈으로 무엇인가가 보였는데,그것이,그것이 뭐였느냐 하면.
내 가족?
내 가족.
생일을 준비하던 내 가족들,이 잘린 머리는 어머니의 것
저기 처박혀서 처참하게 뭉개진 머리는 나의 누님의 것
산산조각 나버린 이 머리는 나의 아버지의 것.
바닥을 적시는 흥건한 핏물들은 이미 섞이고 섞여 누구의 것인지 가늠조차 할 수가 없었다.
다시 탁—신발장의 조명이 꺼진다.
한참동안 조명이 켜지질 않았다,나는 숨쉬는 법도 잊은 듯 그자리에 서있었다.
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렸을까,마침내 내가 손을 뻗자 다시 탁—하는 소리와 함께 빛이 점등됐다.
눈을 깜빡인다.
한번,두번,세번,네번...
천천히 눈을 떠본다.
하나,둘,셋.
잔인한 현실은 나를 비웃기라도 하듯 변하지 않았다.
창 밖 너머로 이미 저물어 버린 일몰이 하늘을 붉게 물들였지만,
어쩐지 거실엔 일몰이 닿지 않았음에도 이미 물들어 있는 듯 보였다.
'아.'
나의 짧은 단말마는 어쩌면 비명이었을지도 모른다.
울어야 하나,분명 눈물을 흘려야 할 것 같은데...
왜 눈물이 나오질 않지?
나의 불행과는 무관한듯,시간은 계속해서 흘러간다.한번의 봄,두번의 여름,겨울엔 눈이내리고 꽃이 피고 저물어간다.나의 시간은 멈춰버린듯 어두웠지만,세상이 흘러가는건 내 의지와는 상관 없는 일이었다.
내가 절망에 차있는 순간에도 누군가는 죽어갔으며,누군가는 눈물 흘렸다.
이게 히어로의 삶인가? 지키려 발버둥 쳐도 지킬 수없는 현실을 받아들이며 사는 것이?
그렇다면,나는 비로소 히어로가 된 것인가?
지키지 못함으로서,나는 완성된 것인가?
미친 생각이지.나는 더이상 온전한 인간이 아니야.
습관적으로 카지노에 들려 빛나는 조명들을 바라본다.
눈이 멀것 같은 저 전구들도 각자의 색을 띠며 나를 조롱한다.
이 향락에 모든걸 내던지면,
이 지옥에 내 모든것을 내던지면,
나는 비로소 행복해 질 수 있을까?
그는 술을 마시던 병을 거칠게 내려 놓았다.밤 하늘에 떠있는 별들 조차 구름 뒤로 숨어버린 꼴이
마치 자신의 처지가 끔찍해 도망쳐 버린 것 같았다.
내일이 오면,내일도 똑같겠지—이 빌어먹을 삶을 유지하는건 희미한 정의감 뿐이었다.
내일도 나는 망가지고,무너지고,끝없이 절망에 신음하겠지.
지킬 수 없는것에 대한 허무와 불행을 내뱉으면서도 나는 지켜 나갈 것이다.
어머니랑 약속했거든,
히어로를 하기로.
지옥에 처박힌 주제에,지옥을 구원하려 드는 꼴이지.
그럼에도,나는 히어로야.